사우디아라비아 -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사우디아라비아 왕국المملكة العربيّة السّعوديّة 국기 국장 표어أشهد أن لا إله إلاَّ الله و أشهد أن محمد رسول الله표어 설명(나는 하나님(알라) 이외에는 경배받을 존재가 없으며 무함마드는 하나님의 사도임을 증언한다)국가군주를 찬양하라 수도리야드 북위 24° 42′ 42″ 동경 46° 43′ 27″ / 북위 24. 711667° 동경 46. 724167° 리야드 정치정치체제단일국가, 전제군주제국왕살만 빈 압둘아지즈 알사우드왕세자무하마드 빈 살만 알사우드역사독립네지드 왕국 • 건국1926년 1월 8일 • 승인1927년 5월 20일 • 통합1932년 9월 23일지리면적2, 149, 690 km2 (12 위)내수면 비율0.
국가적으로는 단 한 명도 빠짐없이 모든 국민들이 무슬림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단, 종교의 자유가 보장된다고 알려진 다른 아랍 국가 중에서도 그러듯 사우디아라비아에서도 또한 사우디 자국민을 제외한 외국인이 국가에서 지정한 이슬람교 이외의 종교를 개인적으로 믿을 수 있게 해준다. 다만, 이슬람교의 예배장소인 모스크를 제외한 교회와 절, 사원 등의 종교 시설의 설립은 법으로 막고있다. 사우디아라비아는 이슬람교의 발상지이고 수니파 이슬람교가 국교이며 건국 이념에서도 "알라 외에는 신이 없으며, 무함마드는 그의 사도이다. "인 것에서 알 수 있듯이 다른 종교는 함부로 국민들을 대상으로 포교를 하거나 선교를 할 수 없다. 라마단(禁食)이 엄격하게 지켜지며(이 때문에 1998년 아시안 게임에 불참하였다. ), 공항에서 술, 음란 잡지 등은 적발시 압수조치될 정도로 무슬림 율법의 적용에 매우 엄격하다. 종교 때문에 야구 등 시간 제한이 없는 스포츠보다는 축구 등 시간 제한이 있는 스포츠가 발달하였다. 종파 별로는 전체 인구의 90%가 수니파이며, 10%는 시아파에 속하는데, [24] 사우디아라비아에서 가장 주된 교파를 차지하고 있는 수니파는 이슬람 근본주의를 추구하는 와하비즘이다. 와하비즘은 주로 아라비아 반도에서 그 세를 불리고 있으며, 18세기에 무함마드 이븐 압둘 와하브가 창시하였다. 이같은 폐쇄적인 교리 때문에 같은 무슬림 사이에서도 소수파인 시아파는 사우디아라비아에서 탄압받고 있다.
현재 사우디아라비아에는 총 150만 명에 달하는 기독교인들이 거주하고 있는데, 이들 대부분은 모두 외국인 노동자들이다. 사우디아라비아에서는 단기적인 직업 목적으로 기독교도들이 국내로 들어오는 것은 제한적으로 허가하고 있으나, 다만 공개적으로 믿음을 드러내거나 포교하는 것은 엄격히 금지한다. 이런 탄압 때문에 사우디아라비아 국민들의 기독교 비율은 거의 0에 가깝다. 자국민이 만일 이슬람교에서 기독교로 개종하였을 때에는 사형이라는 극약 처방을 하기도 한다. 사우디아라비아에는 현재 39만 명에 달하는 힌두교도들이 있는데, 대부분이 인도 계열의 외국인 노동자이다.
약 5년 동안 이븐 사우드는 헤자즈 왕국과 네지드 왕국을 따로따로 다스렸다. [12] 헤자즈 왕국을 정복한 이후, 이크완들의 목표는 와하비즘의 세력들을 영국의 쿠웨이트, 이라크, 요르단 보호령 등지로 확장하는 것으로 바뀌었고, 얼마 지나지 않아 이들은 점차 영국령을 공격하기 시작하였다. 이는 이븐 사우드의 급격한 반대를 일으켰는데, 이는 이븐 사우드가 영국과의 직접적인 충돌이 얼마나 위험한지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와 동시에 이크완과 이슬람 과격주의 세력들은 현대화와 외국인들의 이주를 장려하는 듯한 이븐 사우드의 국내 정책에 실망하였고, 결국 이븐 사우드에게 등을 돌렸다. 허나 이들은 1929년에 결국 사빌라 전투에서 진압되었고, 지도자들은 모두 처형되었다. 1932년 9월 23일, 헤자즈 왕국과 네지드 왕국은 서로 통합되어 사우디아라비아 왕국이 공식적으로 성립되었고, 현재 사우디아라비아에서는 이날을 건국기념일로 기리고 있다.
10세기부터 20세기 초까지, 메카와 메디나 지방은 메카의 샤리프라고 하는 토착 지배자가 통치하였다. 허나 대부분의 경우, 메카의 샤리프들은 바그다드, 카이로, 이스탄불 등에 위치한 제국들의 간접적인 통치를 받았으며, 사우디아라비아가 세워지기 직전까지도 전통적인 토후국들이 갈래갈래 나뉘어 아라비아 반도를 각자 통치하고 있었다. 10세기에는 전반적으로 시아파의 한 부류인 이스마일파 계열의 까라마타파가 페르시아 만에서 가장 강력한 세력이었다. 그러나 930년경, 까라마타파는 메카를 침공하여 약탈하였고, 특히 이 과정에서 메카의 카바에 박혀있는 ‘검은 돌’을 훔쳐가면서 이슬람 세계의 공적으로 변해버리고 말았다. [8] 결국 1077년, 아랍의 압둘라 빈 알리 알 우유니가 셀주크 제국의 도움을 받아 바레인 지방에서 까라마타파를 꺾고 우유니드 왕조를 세웠다. 우유니드 제국은 후에 시리아의 사막까지 영토를 확장하며 전성기를 구가하였으나, 1253년 경에 유스푸리드 왕조가 들어서며 멸망하였다. 한편 유스푸리드 왕조는 1320년에 페르시아인의 침공으로 세가 크게 약해졌고, 14세기에 이르자 자와니드 왕조가 동부 아라비아를 지배하였다.
이븐 사우드는 와하비즘 영향을 받은 부족군대 이크완의 지지를 받았고, 이븐 사우드는 이들의 도움을 받아 1913년에 알 아샤 지역을 오스만 제국으로부터 강탈하는 데에 성공하였다. 1916년, 메카의 샤리프였던 후세인 빈 알리는 제1차 세계대전에서 오스만 제국과 전쟁을 벌이고 있던 영국의 도움을 받아 범아랍적인 반오스만 투쟁을 벌이기 시작하였고, 통일된 아랍 국가를 만들어내기 위하여 노력하였다. [11] 이후 세계대전에서 오스만 제국이 패하자 결국 오스만 제국은 아라비아에서 패퇴할 수 밖에 없었고, 후세인 빈 알리는 헤자즈 왕국의 왕으로 등극하였다. 이븐 사우드는 아랍에서 일어난 반란에 참여하기를 꺼렸고, 대신 알 라시드 가문과의 투쟁을 계속하였다. 이후 알 라시드 가문을 꺾은 이븐 사우드는 네지드의 술탄직을 1921년에 얻어내었고 이크완의 지지를 등에 업고 후세인 빈 알리의 헤자즈 왕국을 1925년에 복속시키는 데에 성공하였다. 1926년 1월에 이븐 사우드는 스스로를 헤자즈의 왕으로 선포하였고, 이후 네지드의 국왕도 겸직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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